2015 프랑스오픈이 스탄 바브링카(스위스, 8번시드)의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5월24일부터 6월7일까지 열린 프랑스 오픈은 총 상금 약 2,800만유로(한화 약380억)로 2,500만유로였던 지난해에 비해 12% 인상됐다. 바브링카는 세계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1번시드)를 3대1(4-6 6-4 6-3 6-4 )로 누르고 우승했다. 조코비치와의 상대전적 3승17패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바브링카는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생애 두번째 그랜드슬램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만5천석의 필립 샤트리에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조코비치와 바브링카가 코트에 등장하자 열렬히 환호했다. 둘의 결승전은 1세트 초반부터 활활 타올랐다. 바브링카의 서브로 시작된 첫 게임부터 둘은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두 번째 듀스, 바브링카는 서브를 넣었고 조코비치는 리턴을 했다. 둘의 랠리는 무려 40번을 기록했다. 한 포인트가 한 게임의 랠리와 거의 맞먹는 숫자다. 그들의 기 싸움은 이렇게 초반부터 격렬했다. 바브링카는 조코비치의 백핸드 에러와 자신의 포핸드 위너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잘 지켰다. 만약, 이 첫 게임에서 바브링카가 조코비치와의 랠리 기 싸움에서 졌다면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은 초반부터 조코비치에게 갔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1세트에서 서로 자신의 서브게임을 잘 지켜나가는 듯 했으나 3대3에서 바브링카는 러브포인트로 조코비치에게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그 서브 게임은 1세트를 조코비치가 획득하게 했다. 2세트, 이번에도 바브링카의 서브로 시작됐다. 바브링카와 조코비치는 5대4까지 자신의 서브게임을 잘 지켜나갔다. 4대5 조코비치의 서브, 30-0에서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이 조코비치의 곁을 스치며 멋지게 들어가더니 이내 포핸드 다운더라인 위너까지 작렬했다. 두 개의 커다란 다운더라인을 두들겨 맞은 조코비치는 연신 2개의 백핸드 에러를 범했고 2세트는 바브링카가 6대4로 이기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3세트 승부는 전반부에 나타났다. 2대3 조코비치의 서브, 23번의 랠리 끝에 바브링카가 친 볼이 베이스라인에 맞으며 불규칙 바운드가 났다. 베이스라인 가까이 있었던 조코비치는 빠르게 볼을 쳤으나 그것은 사이드라인 멀리 날아갔다. 이어 바브링카는 포핸드 다운더라인 위너, 백핸드 다운더라인 위너, 그리고 또 조코비치의 백핸드 드롭샷을 네트로 달려가 포핸드 위너를 작렬하며 조코비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3세트를 바브링카가 따면서 세트스코어 2대1로 앞서 나갔다. 4세트는 조코비치가 먼저 서브를 넣었다. 바브링카는 자신의 첫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하며 0대3으로 밀려갔다. 그러나 포핸드와 백핸드 위너, 그리고 조코비치의 에러에 힘입어 조코비치의 서브를 브레이크를 시키며 잃었던 4세트 처음으로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켰다. 바브링카는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조코비치는 허탈해했다. 4대4에서 조코비치의 서브가 시작됐다. 이때까지 매치 시간은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4구를 포핸드 드롭샷을 놨다. 바브링카가 따라가 넘겼고 조코비치는 다시 네트를 넘겼으나 사이드 라인 아웃됐다. 그리고 바브링카가 백핸드 다운더라인 위닝샷을 날렸다. 30대 30, 역 크로스 포핸드로 바브링카의 백핸드 쪽으로 깊숙이 볼을 치고 네트 플레이 들어오는 조코비치에게 바브링카는 강력한 백핸드를 날렸다. 그 볼은 조코비치의 옆을 지났고 조코비치는 팔을 쭉 뻗어 봤으나 닿지 않았다. 패싱샷이 됐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서브 앤 발리로 듀스를 만들었다. 조코비치는 다시 서브앤 발리로 네트를 파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바브링카가 강력한 백핸드 다운더라인을 날렸다. 조코비치는 받았으나 파워에 밀려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브링카는 강력한 백핸드 다운더라인으로 승부의 결정타를 날렸다. 게임 스코어 5대4 두 번의 듀스 끝에 롤랑가로스의 종지부를 찍은 샷도 백핸드 다운더라인이었다. 서브 포인트로 매치 포인트를 잡은 바브링카는 조코비치의 백핸드로 서브를 넣었다. 조코비치는 백핸드 드라이브로 바브링카의 백핸드 리턴 했고 바브링카는 강력한 백핸드 다운더라인으로 조코비치 코트를 향해 날렸다. 조코비치는 달려가다 이내 걸음을 멈췄고 바브링카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바브링카와 조코비치의 결승전은 모든 면에서 바브링카가 조코비치를 압도했다. 서브 에이스(9/6), 서브 속도(퍼스트 최고 218/204, 평균190/186) 위너(60/30), 랠리 등 거의 대부분이 바브링카가 조코비치에 앞섰다. 그 가장 큰 공신은 바브링카의 흩뿌리는 듯한 백핸드 샷이다. 조코비치를 비롯 대부분의 선수들은 백핸드 샷은 또박 또박 받아치는 샷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바브링카의 백핸드 샷은 포핸드 샷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포핸드처럼 강력하게 날아오는 백핸드는 상대편을 괴롭히기 충분했다. 거기에 기회만 있으면 다운더라인을 작렬시켰다. 크로스, 다운더라인을 번갈아 날아드는 강력한 바브링카의 백핸드에 질 시몽으로부터 2번 시드 페더러, 니시코리를 물리치고 올라온 송가가 모두 나가 떨어졌다. 바브링카는 본선1라운드에서 결승전까지 단 2세트만 잃었다. 그 두 세트는 2라운드에서 맞붙은 두산 라조비치와 결승전의 노박 조코비치였다. 그 둘은 모두 세르비아인이다. 사실 바브링카는 호주오픈 우승하기 전까지는 그랜드슬램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다. 2006년부터 그랜드슬램에 등장한 바브링카는 2013년까지 최고 성적이 US오픈에서 4강 진출이었다. 그리고 2014년에 호주오픈에서 우승을 하고 그 다음 이곳 롤랑가로스에서 1라운드 탈락했다. 호주오픈의 우승에 이어 롤랑가로스에서 1라운드 탈락하자 사람들은 호주오픈의 우승이 어쩌다 운이 좋아 그랜드슬램에 우승한 선수로 기억했다. 그러나 이번 롤랑가로스에서 다시 우승하면서 그는 단식 우승상금 180만유로(약22억)라는 금전적인 수익과 함께 명실공히 나달(호주오픈)과 조코비치(프랑스오픈), 페더러(8강)를 모두 꺾고 그랜드슬램 우승한 선수로 이제 우리 뇌리에 남게 됐다. 조코비치에게 오늘 롤랑가로스의 패배는 여느 대회와는 다르다. 매우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조코비치는 결승전이 끝나고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였다.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나 조코비치에게는 페더러, 나달이 갖고 있는 그 하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이었다. 조코비치에게 이번 프랑스오픈은 그토록 염원하던 커리어 그랜드슬램(4개 그랜드슬램을 모두 우승하는것)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롤랑가로스에서 최후의 1인이 되면 캘린더 그랜드슬램(1년에 4개 그랜드슬램 모두 우승하는것)도 욕심 내 볼 수 있었다. 조코비치에겐 롤랑가로스의 6월7일이 그런 의미가 들어 있는 날이었다. 조코비치는 2011년부터 2013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세계1위로 연말 랭킹을 마감했다. 12번 결승에 올라 챔피언도 7번을 먹었다. 이곳 롤랑가로스에서도 두 번(12, 14)이나 결승에 올랐다. 그런데 나달에게 모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1년엔 오로지 이곳 롤랑가로스에서만 나달에게 졌다. 그런데 맘 단단히 먹고 나와 나달을 8강에서 세트스코어 3대0으로 눌렀다. 이제 롤랑가로스의 우승컵은 자신의 것인 양 생각 됐다. 드디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생각지도 않던 바브링카에게 또 졌다. 왜 자신에게만 우승을 허락하지 않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을 게다. 시상대가 마련되고 우승컵이 놓여지고 구스타보 쿠에르텐의 영상이 전광판에 흐를 때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나운서가 “준우승자 노박 조코비치”라는 소리와 함께 울컥 가슴이 먹먹해졌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단상에 올라 네모난 쟁반 준우승 컵을 받아 드니 그대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페더러가 나달에게 지고 눈물 흘렸던 그 심정이 이런 것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한 참을 눈이 벌겋게 상기됐다. 조코비치가 오늘 프랑스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면 페더러, 나달과 함께 현존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코비치가 그 명성을 얻을 기회를 가지려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 1년 후엔 조코비치가 그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   | | ▲ 파리 에펠탑에 롤랑가로스 볼이 매달려 있다. 에펠탑 앞에는 롤랑가로스에 있는 코트와 똑같은 앙투카 코트 1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주니어들이 본선 티켓 1장을 놓고 혈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 코트는 일반인에게 개방 되었다. 테니스피플도 그곳을 찾았다. 두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프랑스오픈 기간에 똑같은 코트를 우리나라에 만든다는데 어떻게 생겼고 운영되는 것인지 궁금해서고, 둘째는 우리도 앙투카 코트 위에서 볼을 쳐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그런데 이미 개방시간이 끝났다고 안된다 해서 사진만 담고 왔다. 에펠탑 좌측으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세레나와 바브링카가 에펠탑 앞에서 우승 세레모니를 했다. |
|   | | ▲ 조코비치의 첫 서브다. |
|   | | ▲ 세르비아 국민이 자국의 국기를 목에 걸치고 조코비치를 응원하고 있다 |
|   | | 바브링카가 2세트를 가져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   | | ▲ 조코비치가 바브링카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시키고 포효하고 있다 |
|   | | ▲ 조코비치가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을 뒤로 돌아 막아내고 있다 |
|   | | ▲ 바브링카의 백핸드 샷이다. 흩뿌리는 백핸드는 바브링카가 우승하는데 일등 공신이다. 특히, 백핸드 다운더라인은 백미였다 |
|   | | ▲ 조코비치의 드롭샷이 네트 가까이 떨어졌다. 바브링카가 슬라이딩으로 그 볼을 받아내고 있다. |
|   | | 바브링카의 마지막 매치포인트 백핸드 다운더라인 샷이다 |
|   | | ▲ 바브링카가 매치가 끝나고 네트에서 조코비치를 끌어안고 위로하고 있다. 과연 조코비치와 나달이 우승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바브링카의 패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느껴진다. |
|   | | ▲ 바브링카가 우승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창한 프랑스어로 인터뷰를 했다 |
| | | |   | | ▲ 바브링카가 우승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코비치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음료를 섭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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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롤랑가로스의 트로피다. 맨 좌측 쟁반은 결승전 심판, 가운데 네모난 트로피는 조코비치, 우측의 우승컵은 바브링카가 들었다 |
|   | | ▲ 구스타보 쿠에르텐이 자신의 우승 영상이 나오고 있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구스타보는 롤랑가로스에서 3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좌측은 프랑스 테니스협회 쟝 가샤셍 회장. 롤랑가로스 옆 공원에 새로운 실내코트를 건설 추진중이다. 결승전이 열리는날 파리 시민들은 새로운 코트가 건설되는 공원에서 실내코트 건설 반대시위를 벌였다 |
|   | | ▲ 조코비치가 시상대 위로 오르고 있다. 등 뒤에서 바브링카가 바라보고 있다 |
|   | | ▲ 관중들의 환호에 조코비치가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있다 |
|   | | ▲ 그러나 이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조코비치의 눈에 눈물이 그칠때까지 관중들은 조코비치에게 박수를 보냈다. |
|   | | ▲ 조코비치의 눈이 눈물로 인해 충혈되어 있다 |
|   | | ▲ 조코비치의 눈물이 그치자 바브링카가 시상대 위로 올라왔다. 조코비치가 바브링카의 머리를 두드리며 우승을 축하해줬다 |
|   | | ▲ 구스타보 쿠에르텐에게 우승컵을 넘겨 받는 바브링카 |
|   | | ▲ 바브링카가 우승컵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호주오픈에 이어 두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이다 |
|   | | 스위스 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기가 게양되는 동안 바브링카가 우승컵을 들고 서 있다 |
|   | | ▲ 시상식에는 우승자의 국가가 울려 퍼졌고 국기 게양대에 스위스 국기가 올랐다 |
|   | | 준우승 조코비치, 프랑스 테니스협회 쟝 가샤셍 회장, 우승자 바브링카, 구스타보 쿠에르텐. 메인 스폰서인 BNP파리바는 시상대에 오르지 않았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 BNP파리바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코트에서 안내를 했다. |
|   | | ▲ 우승자와 준우승자. 조코비치와 바브링카의 신발이 앙투카에 물들어 있다. 그들의 표정이 오히려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바뀐듯 하다 |
|   | | 바브링카가 우승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   | | ▲ 관중들은 1만 5천여석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바브링카와 조코비치의 샷에 열광했고 둘의 결승전을 충분히 즐겼다. 그들에게 롤랑가로스는 가장 큰 이벤트이자 축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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